제13회 평택 생태시문학상 전국 공모전 수상자발표, 수상작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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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4 10:50
★제13회 평택 생태시 문학상 대상작품
코로노파지아의 숲
신제이 (본명 신화정)
콘크리트가 숨을 움켜쥐자
크레인은 저녁의 구름을 삼켰다.
소나무의 뿌리는
아스팔트 틈에서 떨렸다.
수액은 위로 오르려 했지만
굳은 공기만 되뇌었다.
굴뚝은 그을음을 키웠고
낡은 철망 위엔
구름이 오래 눌러앉았다.
떠다니는 얼굴들,
강물에 비친 이름을
나는 묻지 않았다.
침묵은 폐허보다 깊었다.
거울 속 초상 하나가
방음벽을 찢고 걸어 나왔고
초원은 사라진 짐승의 체온으로 젖었다.
표지판을 스치는 모래꽃은
지문조차 남기지 않았다.
달은 크레인에 매달려
가만히 고개를 젖혔고
별들은 그 달을 따라
빛을 잃어갔다.
그 하늘은 어느새
산업단지의 도면이 되었다.
굴착기 소리.
나뭇가지의 기억을 털어내며 울렸고
모래 위 씨앗 하나가
껍질을 찢는 순간
도심 가로등이 울음을 흘렸다.
폐품 더미 위 종이배 하나,
강의 뼈대를 접고 있었다
연어는 콘크리트 틈을 따라
기름 냄새를 흘리며
지느러미로 파도를 엮었다.
그 파도 속에는
강이 되기 전의 시간이
파이프처럼 휘어져 있었고
나는 그 시간을
두 손으로 감쌌다.
마침내, 물기 어린 뿌리 하나가
돌 틈을 뚫고 나왔다.
그 뿌리는 내 손바닥 안에서
묻히지 못한 언어처럼 자라났다.
평택〔생태시 문학상〕대상 당선 소감
신제이
자연은 언제나 말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침묵은 결코 무의미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그 고요 속에 귀를 기울이고, 상처 입은 지구의 목소리를 읽어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이번 공모전에서 저의 시가 그러한 자연의 침묵에 작은 울림으로 응답할 수 있었던 것 같아, 무엇보다도 기쁘고 깊이 감사드립니다.
생태는 이제 더 이상 소수의 이슈가 아닙니다. 지구촌 전체가 직면한 절박한 과제이며, 무엇보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근본적으로 다시 자신을 성찰해야 하는 시점에 와 있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자연을 인간 바깥의 대상, 정복하거나 이용해야 할 자원으로 여겨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이분법을 넘어설 때입니다. 인간은 자연의 중심이 아니라, 자연의 일부입니다. 네오휴머니즘적 차원에서 ‘인간중심주의’를 내려놓고, 생명 중심, 생태 중심의 새로운 인식 틀 위에서 우리 존재를 재정립해야 할 것입니다.
이번에 수상하게 된 작품은 그러한 인식의 변화를 담아내기 위한 시적 실험이자, 인간 내면에 여전히 남아 있는 자연의 기억을 불러내려는 노력이었습니다. 자연은 외부가 아닌 내부이며, 우리는 산과 강, 바람과 새, 흙과 이끼의 연장선상에 놓인 존재입니다. 시는 그것을 잊지 않기 위한 언어의 작은 저항이며, 동시에 치유의 통로이기도 합니다.
저는 이 상이 단순한 문학적 평가를 넘어서, 생태적 감수성을 회복하고 확산하는 데 작게나마 기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의 신호로 느껴집니다. 여전히 부족한 글에 이렇게 큰 상을 주신 심사위원님들과 주최 측 평택시에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이번 수상을 계기로 생태적 시 쓰기의 길을 더 깊고 넓게 걸어가고자 합니다.
자연은 기억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대했는지를. 이제는 우리가 자연의 기억을 회복해야 할 차례입니다. 그리고 시는 그 회복의 언어입니다.
고맙습니다.
—2025년
★제13회 평택 생태시 문학상 우수상 작품
섬진강 낮도깨비 마을에 무지개가 뜨면
김영현
섬진강 낮도깨비 마을은 해가 지지 않는다
하늘 도깨비가 천상계를 방망이로 두동강 내어
반으로 잘라냈기 때문이다
파스텔 톤의 하늘이 붉은 그라데이션의 노을로 바뀔 때
하늘도깨비는 망설인다
이내 지치지 않는 밝음만 있는 유토피아 사회를 위하여
어둠과 밤을 꿀꺽 삼켰다
누군가의 꿈을 수놓는 별과
누군가의 소원을 방아 찧는 달과
모두의 영혼을 우아하게 비추는 은하수가
고이 잠든 어둠에
누군가의 의지를 꿋꿋하게 지탱하는 나무와
누군가의 땀방울이 이슬로 맺힌 풀잎들이
초라해 진 밤을 일으켜 세우지 못하고
술과 밤과 낭만이 없는 도깨비의 목마가
존재했다는 사실은 허언이었다
재충전의 시간인데 배터리가 고갈 된
밤을 삼킨 하늘 도깨비는 건강한 트림을 한다
은은하게 퍼지는 자연의 향기가 점점 공기 중으로 희미해진다
낮에는 심술보가 덕지덕지 붙은 자들이
은혜를 갚는 제비의 다리를 부러뜨리고
성장을 실천하는 성실한 꽃들을 꺾어버리고
기름진 땅 위를 시멘트로 물감을 칠하고
석유정제로 무언가를 계속해서 만든다
하루 종일 “이상세계”라는 건물을
뚝딱뚝딱 높이높이 만든다
